[HAM] 아마추어 무선(Amateur Radio)의 역사



[HAM] 아마추어 무선(Amateur Radio)의 역사



1.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1874∼1937)
이태리 태생의 [마르코니]는 [리보르노 공대]를 졸업, 1894년 [H. R. Hertz]가 사망하자 헤르츠파(波)의 응용에 착안하여, 부친 집에서 무선전신의 실험을 시작하였다. 1896년에는 무선전신에 관한 영국 특허를 취득, 런던 체신청에서 최초의 공개실험에 성공하였으며, 1897년 런던에서 무선전신회사를 창립하고, 도버해협에서 영국∼프랑스의 통신을 실현시켰다.

 

그 후 대서양을 사이에 둔 송 수신은 1901년 12월 12일 [콘월주(州) 폴듀]와 [뉴펀들란드]의 [세인트 존즈] 사이에서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무선전신은 해저 전신 사업계로부터 심한 저항을 받았으나 대(對) 선박 또는 선박 대 선박통신의 독무대가 되었다.

 

마르코니는 그 밖에도 단일 안테나에 의한 동조식(同調式) 및 다중 전신동조의 방식(1901), 자기 검파기(磁氣檢波器)(1902), 수평지향성 안테나(1905) 등을 발명하였으며, 그 후로는 그의 회사에 [J. A. 플레밍]을 비롯하여 많은 과학자들을 고문으로 맞아들여 통신거리의 연장, 동조(同調)의 개선 및 공전(空電) 혼신의 제거에 주력하였다.

 

1909년 [K. F. 브라운]과 공동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또한 1919년에는 파리 평화회의의 이태리 전권 대표가 되었다.

 

2. 무선통신의 발명
마르코니에 의해 무선통신이 발명되자, 전선(電線) 없이 통신을 할 수 있는 이 무선통신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전기나 통신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무선통신의 실험을 순순한 개인적인 흥미로 손대기 시작한 것이 아마추어무선의 시초였다.

 

G2HA 라는 무선국을 운용하는 영국의 [맥슨]씨는 1899년부터 아마추어무선을 시작하였다고 하니, 결국 아마추어무선의 시조(始祖)는 마르코니 자신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시작된 아마추어무선은 이태리에서 영국으로, 다시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퍼지기 시작하였지만, 그 당시만 해도 무선통신이란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별로 이용되지 못하였고 그저 아마추어들의 흥미로운 연구의 대상일 뿐이었다.

모든 상업무선 통신보다 앞서서 시작된 아마추어무선의 초기에는 그 호출부호도 제멋대로 부여하였으며, 또한 이들을 규제하는 법규도 없었으므로 한가한 시기였다.

 

이런 식으로 십여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좀 더 능률적인 통신이 가능하도록 열심히 연구를 거듭한 햄들과 학자들의 힘으로 무선통신은 차차 실용성을 띠게 되었고 상업국이 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진공관도 없이 수 kW의 거대한 발전기를 돌려가며 불꽃방전을 시켜 통신을 하던 초기의 무선통신에는 파장이 수백 미터 내지 수천 미터나 되는 장파(長波)를 쓰고 있었다.

 

당시의 이론으로는 단파(短波)란 겨우 옆집정도나 통화할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단파라야 원거리 통신이 된다는 오늘날의 상식과는 동떨어진 이론이 통용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장파를 사용하면서 무선국의 수가 하나 둘씩 늘어가자 무선국 상호간의 혼신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물론 시설도 원시적(原始的)이었으므로 이와 같은 혼신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였다. 그래서 무법의 전파를 통제할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3. 세계 최초의 전파법
1912년 무선통신이 가장 활발하였던 미국은 세계 최초의 전파법을 제정하였다. 그리하여 아마추어무선사들은 파장 200m 이하의 단파대로 쫓겨나고 말았으나, 아마추어무선사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단파대를 개척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단파대에서 미국 햄들의 피땀어린 실험이 시작되었으며, 결국 단파대를 이용한 통신의 통달거리는 곳곳에서 신기록이 수립되었다.

 

4. 미국아마추어무선연맹(ARRL)의 탄생
1914년 수천 명에 이르렀던 미국의 햄들은 고(故) [맥심]씨의 제창으로 미국아마추어무선연맹인 ARRL(American Radio Relay League)을 조직하고 조직적인 실험을 시작하였으나, 1917년의 제 1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아마추어무선국은 폐국 명령을 받아 아마추어무선 활동이 중지되고 말았다. 당시 약 6천명에 이르렀던 ARRL의 회원 중 약 4천 여명이 무선통신의 경험을 살려 군대에 동원되었고, 물론 유럽에서도 많은 햄들이 군에 동원되었으며, 따라서 아마추어무선 활동은 일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1919년 세계대전이 끝나자 군대에서 더욱 더 기술을 연마한 햄들은 전쟁 후에 방출된 많은 무선통신기의 재료들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5. 단파대의 대서양 횡단 통신
1921년 12월 ARRL에서는 전파의 대서양 횡단 통신을 실험하기 위하여, 회원 중 가장 우수한 햄인 2ZE 에게 그 당시로서는 가장 고성능인 수신기를 주어 유럽으로 파견하고 미국 햄들의 전파를 수신하게 하였다. 그 결과 약 30국의 미국 햄들의 신호를 수신할 수 있었으며, 이듬해인 1922년에는 300여의 미국 햄들의 신호를 수신할 수가 있었다. 또한 미국에서도 프랑스와 영국 햄의 신호를 수신하여 일방향(一方向) 통신은 성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목표는 완전한 교신이었지만 그 당시의 기계나 기술로써는 한계가 있었다.

 

1923년 11월 7일, 드디어 미국의 1MO(W9UZ) 와 1XAM(K6BJ; 1964. 11. 작고)은 프랑스의 8AB 2)와 파장 20m로 교신하는데 성공, 단파대에서 대서양 횡단 통신을 하여 당시의 무선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오늘과 같은 단파 만능시대의 막을 올리게 했던 것이다.

 

6. 전리층의 발견
이와 같이 햄들의 손으로 막을 올린 단파통신은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오히려 파장이 길면 길수록 원거리통신이 잘 된다는 결과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여러 학자들이 연구한 끝에 드디어 [케네리]와 [헤비사이드]에 의하여 [케네리-헤비사이드층]이라고 부르는 전리층(電離層, 이온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단파통신에 대한 이론도 체계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소전력(小電力)으로 원거리통신이 잘 되는 단파대로 많은 상업국들이 옮겨오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순전히 햄들의 손으로 개척된 단파대가 이제는 무선통신의 대명사가 되어 [무선통신]하면 [단파]라고 상식화되고 말았지만, 이것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햄들이, 이론을 제쳐놓고 서로 도와 가며 실험으로 이룩해 놓은 빛나는 기록인 것이었다.

 

7. 국제아마추어무선연합(IARU)의 탄생
이러한 단파대의 성공으로 원거리교신이 쉽게 되자, 전 세계의 햄들의 수는 부쩍 늘어났고, 드디어 1925년에는 그 때까지 각 나라별로 조직되었던 아마추어무선 단체의 통합체인 국제 아마추어무선연합인 IARU(International Amateur Radio Union)이 조직되어, 초대 회장에는 ARRL의 회장이었던 W1AW(맥심) 씨가 겸임하게 되었다.

 

이렇게 전파(傳播)되던 아마추어무선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세계 각국은 아마추어무선의 활동을 중지시키고 말았으며, 대부분의 햄들은 또 다시 군으로 연구소로 불려갔다. 그리하여 많은 햄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그들이 평소에 연마한 기술을 봉사하고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Silent Key(햄의 사망)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패전국 몇 나라를 제외한 전 세계의 아마추어무선활동이 재개(再開)되었으며, 패전국의 재개는 약간 늦어져서 1948년에 독일에 이어 이탈리아 그리고 1951년에 일본이 아마추어무선의 활동을 허가함으로써 패전국의 아마추어무선 개방은 실현되었다. 그러나 전승국이었던 자유중국은 중공과의 싸움 때문에 1964년에 비로소 하나가 허가되었다.

 

 

글출처: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http://www.karl.or.kr/

2008/01/13 14:02 [HAM] 아마추어 무선(Amateur Radio)의 역사
2008/01/13 14:02 in 분류중. http://ndot.co.kr
Posted by HingHing